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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티 
새벽, 제5의 문을 여는 디스크자키 전영혁


깊은 밤에 문이 하나 열린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온몸을 음악에 던질 수 있는 세계가 있다. 전파가 만들어 내는 물리적 사방의 한계를 넘는 세계, 지극한 평화와 무언의 희열만이 넘치는 곳이다. 그 문을 열고 닫는 문지기 전영혁(54). 그는 이쪽이 문이라고 알려줄 뿐 아무 말도 없다. 기껏해야 "전영혁의 음악 세계입니다"로 시작해 "디스크자키 전영혁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사말뿐이다. 조금 더 하면 "누구의 어떤 곡이었습니다" 정도.

1986년 4월 29일 처음으로 전파를 탄 후, 올해로 꼭 20년째. 수많은 이들에게 불면의 밤을 가져다준 라디오 방송 <전영혁의 음악세계>(KBS 2FM, 매일 새벽 2~3시). <25시의 데이트> <1시의 데이트> < FM 25시> <음악세계> 등 이름도 바뀌었고 방송사도 옮겨다녔지만 '전영혁'이라는 이름은 한결같은 신뢰를 주었다.

전영혁. 그는 '진짜' 디제이다. 예민하고 까다롭게 모든 곡을 직접 선곡하고 음반을 집어들어 플레이어에 올려놓는다. 디제이로서 당연한 모습이지만 이런 그를 '진짜 디제이'라고 불러야 하는 상황은 참으로 안타깝다. 방송 20주년을 맞이한 그의 삶 그리고 음악 이야기를 청취하기 위해 지난 12일 KBS 라디오 스튜디오를 찾았다.

'디제이' 아닌 '디스크자키' 고집하는 이유



▲ 방송할 곡이 올려진 턴테이블. 20년을 함께한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 서동신

- 4월 29일이면 방송 20주년을 맞이하는데 감회가 어떤가.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진다. 오랫동안 여기까지 올 수 있어서 기쁘지만 이제 나 혼자 남은 거 아닌가 하는 슬픔…."

- 요즘은 제대로 된 음악 전문 라디오 방송이 거의 없다.
"연예인 디제이들이 라디오를 차지했다. 음악이란 엄청난 거다. 그건 입으로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그저 엉터리만 나오는 거다. 3류가 3류 방송을 만들어 낸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지 않나."

- 방송에서 클로징할 때 꼭 '디스크자키 전영혁'이라고 말한다.
"2시간 동안 방송하면서 노래 두세 곡 틀고, 작가가 써 준 대본 읽고 떠들고…. 그런 사람들도 디제이라고 하는데, 내가 그런 사람들하고 같은 부류로 취급받는 건 싫었다. 하다못해 신당동 떡볶이집 디제이도 있지 않나. 내 나름대로 구분하기로 했다. 디스크자키와 디제이(웃음)."

- 초창기나 지금이나 오프닝, 클로징 멘트도 단순하고 곡을 소개할 때도 별다른 수사가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디제이가 음악을 소개하기 전에 최고의 명곡이니 뭐니 하면서 10분도 넘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거, 그런 건 개그다. 그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건 그만큼 음악을 잘 모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니 쓸데없는 말로 포장하려는 거다. 판단은 청취자에게 맡겨야 한다.

또 하나 이유가 있다. 하루종일 방송은 언어 공해라고 할 정도로 떠들어 댄다. 내 방송은 편안하게 음악에 몸을 맡기고 듣는 방송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저런 구차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음악 좋고 느낄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니겠나."

- 좋은 디제이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디제이란 음악을 그냥 '던지는' 사람이다. 디제이는 평론가 역할을 해선 안 된다. 가이드만 하는 거다. 선곡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판단은 청취자 몫으로 남겨야 한다. 그리고 디제이란 '발굴'하고 '캐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요즘 아마 제대로 음악 듣고 선곡하는 디제이가 거의 없을 거다. 음반사에서 준 홍보용 음반에 동그라미 쳐 있는 곡 틀고 말 거다. 디제이라면 이런 작업을 '나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어야 하고, 음반도 사고 들어 보고 해야 한다."

조지 윈스턴, 라디오헤드도 <음악세계> 통해 알려져

- 많은 시련을 겪긴 했지만 20년 동안 장수한 비결도 그런 전문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전영혁의 음악세계>는 디제이가 전적으로 선곡 권한을 갖는다. 다른 방송에서는 직접 판(음반) 사서 들어 보고 선곡하는 디제이는 없을 거다. 방송국 라이브러리는 쓸 게 없어서 손도 안 댄다. 전부 내 판 가져다 쓰고 작가도 없고. 그러다 보니 20년 동안 안 잘린 거 아닌가 싶다(웃음). 어쨌든 이 방송이 갖는 카리스마로 계속 살아남는 거라고 본다."

  

▲ 방송할 음반. 손수 정보를 얻고 구입하고 선곡한 곡을 직접 들고 온다. 디지털 파일로 방송하는 법은 절대 없으며 방송국 라이브러리는 그에게 저 먼 곳이다.  

ⓒ 서동신
- 다른 방송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곡이 대부분인데 선곡 기준과 과정은?
"일단 다른 방송에서 널리 알려진 곡들은 선곡하지 않는다. 내 방송에서까지 굳이 틀어줄 이유가 있느냐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음악적으로 볼 때 흡족한 곡들이 있다. 전체적인 완성도나 얼마나 공을 들인 작품인지 등등. 그런 걸 1차로 골라놓고 청취자의 입장이 돼서 다시 들어 본다. 즉 2차 테스트가 있는 거다. 어쨌든, <음악세계>는 가장 먼저 소개하고, 새로운 음악 소개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 <음악세계>를 통해 소개되고 국내에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앨범이나 뮤지션들이 많다.
"조지 윈스턴, 팻 매스니, 키스 재릿, 잉베이 맘스틴, 메탈리카, 헬로윈, 라디오헤드…. 많다. <음악세계>를 통해서 국내에서 알려진 후 소위 '대박'이었다. 소개할 당시 무명이었던 뮤지션도 많고, 국내에 음반이 없어서 일본까지 가서 음반을 사와서 방송했다."

- <음악세계> 애청자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삶의 일부가 된 것 같다. 소위 '전영혁 세대'라는 말도 있고 팬 모임 '수호천사'도 유명하다.
"음악은 삶과 함께 지속하는 것이고 삶을 일구어내는 하나의 동력이 되는 것 같다. 바로 그런 게 음악의 힘이지 않은가. 이번 20주년 기념사업도 팬들이 이루어냈다. 나는 아무 이야기도 안 했는데 서로 모여서 준비했고 성금까지 모았다. 2천만원 정도 모은 걸로 아는데. 세계적으로 아마 최초가 아니겠나 싶다. 이럴 때 정말 보람을 느낀다. 하긴, 20년 동안 공짜로 좋은 음악 많이 들었으니 이제 감사의 표시를 하겠다는 거 아니겠나(웃음)."

- 전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음악 정보를 캐고 음반을 수집했을 텐데,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다.
"그런 이야깃거리는 너무 많아서……. 이렇게 이야기해보자. 음반을 구할 때 어디에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일단 사러 간다. 조바심이 나서 못 참는다. 가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한다. '돈은 원하는 대로 주겠다'. 그래도 수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음악 애호가라면 자기 판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가. 나도 이해한다. 그런데 '당신 혼자 이 좋은 걸 들으려 하는가? 모두 같이 나눌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은가 혼자만 몰래 들으면 무슨 의미냐'라고 설득한다. 그러면 대부분 뺏을 수 있다(웃음). 그러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음반도 수두룩하다. 그래도 뺏으러 간다."

나는 비틀스 마니아, 그 덕에 디제이 됐다

  

▲ 좋은 디제이란 음악을 발굴하고 캐내서 청취자들에게 그냥 '던지는' 사람이다.  

ⓒ 서동신
- '전영혁 개인의 음악세계'를 만들어 준 아티스트나 앨범이 있다면?
"'전영혁은 이상한 음악만 틀더라'며 불평하는 소리도 종종 들었다. 내가 뭐가 되고 내가 뭔가 특이하고 대단한 음악을 듣는 줄 생각하고 씹는 거 같은데, 내가 음악에 빠져든 건 세상 사람 다 아는 비틀스 때문이었다. 지금도 비틀스가 제일 좋다. 비틀스는 내가 중 1때 나왔고 고 3때 해체했다. 그러니...(웃음) 중고등학교 시절 전부였다. 중학교 들어가서 비틀스에 빠지면서 공부하곤 담 쌓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 했다. 말하자면, 영어 국어 같은 건 열심히 해서 거의 매번 100점이었고, 과학이나 수학은 백지 내기 바빴다."

- 첫 직장이 영화사였다고 하던데, 영화사에서 음악잡지 <월간 팝송> 편집장으로 그리고 디제이가 됐다.
"뜻하지 않게 디제이가 됐다. 운명처럼……. DBS 출신의 <월간 팝송> 편집장이었던 나영욱씨가 이민을 하게 되고 나에게 그 자리를 제안했다. (그때 영화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영화사보다 훨씬 월급도 적고 일도 엄청 많았는데, 영화일 해봤으니깐 이제 음악일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딱 서른 살이었다. 젊은 나이의 객기 같은 게 발동한 것 같다. <월간 팝송>으로 가니깐 곧바로 <박원웅과 함께>에서 연락이 왔고 방송 데뷔를 하게 됐다. 1980년 존 레넌 추모 특집 방송이었다.

게스트 참여해 달라고 해서 갔는데, 원고도 없이 덜렁덜렁 갔다. 이미 비틀스는 마스터했고 내 머릿속에 다 있었다. 진행하면서 묻는 말마다 내가 줄줄이 이야기했다. 곧바로 고정 게스트가 됐다. 그 프로그램하고 청취율 경쟁하던 <황인용의 영 팝스>에서도 불렀고 그 방송에 나가고 있었는데 1986년에 당시 박재홍 국장이 '만날 게스트만 하지 말고 너도 하나 해라'면서 고정 프로그램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음악세계>(당시에는 <25시의 데이트>)가 탄생하게 됐다. 내가 디제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원래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영화 쪽에 있었으면, 글쎄. 지금 박찬욱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웃음)."

- 영향받은 디제이가 있다면.
"예전에 기독교방송국에 최경식이라는 디제이가 있었다. 정말 좋은 음악을 많이 틀어줬다. 최초로 킹 크림슨을 소개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디제이라고 볼 수 있다."

방송 20주년...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프다



▲ 또 하나의 세계.  

ⓒ 서동신

- 요즘 문화적으로 빈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음악 쪽이 심한 것 같다.
"70년대를 떠올려 보면 아마 산울림 정도 되는 그룹이 100개는 있었던 것 같다. 김민기 같은 사람은 천재다. 조동진, 하덕규 같은 사람들도 최고다. 지금 젊은이들은 너무 불쌍하다. 문화적으로는 아마도 30년은 퇴보한 것 같다. 지금은 장사꾼들만 판치고 있다."

-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더는 라디오에 애착을 갖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외국의 경우를 봐라. 라디오는 여전히 살아 있고 호소력 있다. 문제는 방송이 잘못하는 거다. 떠들기만 하지 음악을 안 틀어 준다. 제대로 된 음악 정보도 전해주지 않고, 그러니 몰라서 좋은 음반도 못 사고…."

- 방송이 계속 이어지길 바랄 텐데, 후계자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나.
"애청자 중에서 한 명이 바통을 이어받았으면 좋겠다. 우리 애청자 중에 좋은 음반 많이 갖고 있고 음악적으로 해박한 사람이 여럿 있다. 무슨 음악을 틀어 줄 거냐 그게 문제지, 누가 틀어 줄 거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 방송을 떠나 외도할 수 있는 유혹이 많았을 것 같다.
"외국 음반 직배사에서 사장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억대 연봉에 최고급 차를 탈 수 있고…. 그런데 그거 정시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그런 거 아니냐? 그런 건 못한다(웃음). 얽매여 사는 거 못하는 체질이다.

모 신용카드 회사에서 CF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한 가지 일에만 평생을 바친 사람', 이런 광고카피가 나오는 거였는데 카피도 마음에 들었고 억대 개런티에... 내 이미지를 망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유혹이 강했다. 그런데 혹시 만에 하나라도 애청자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오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등이 심했지만 포기했다. 당시 그 섭외를 받아 전해줬던 피디도 그런 제의를 거절하는 경우는 평생 처음 봤다고 했다. 내 명예, 나의 위치... 그런 건 돈으로 못 사는 거 아니겠나."

- 방송 20주년 맞이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트는 모습을 보여줄 걸로 생각한다. 혹시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는지.
"특별한 계획이나 그런 건 없다. 그냥 앞으로도 좋은 음악 계속 틀어주며 살고 싶다. 이 방송이 상업적 외압을 견뎌내며 계속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전문 음악 방송 디제이로는 혼자 남은 전영혁. 그러나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 서동신



전영혁을 말한다  





ⓒ서동신  
전영혁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됐는가?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에서 매우 '큰' 사람이다. -김진묵(54·음악평론가)

"A면 듣겠습니다." 선곡의 파격을 넘어 충격이었다. 엘피판 한 면을 전부 틀었다. 진짜 음악을 들려줬다. -최정식 (35·광고인)

기형도의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낭송하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전영혁은 음악만이 아닌 영화, 문학 모든 것을 논할 수 있게 했던 거대한 문화의 장을 열었다. -홍민표(37·출판인)

전영혁... 한 밤의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음악, 그 새벽 시간들... 수험생 시절 유일한 안식처였다. -장도철(36·회사원)

중 고등학교 힘든 생활 속에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듣던 심야방송. 심야의 어둠을 통해 조용히 들려오던 그의 목소리에는 음악에 대한 진지함이 묻어 있었다.

방송 끝 무렵 제스로 툴의 '엘러지' 속에 섞여 나오던 주옥 같은 시들의 감동은 지금도 잊지 못하는 추억이 되었다. 그의 방송을 통해 처음 접했던 카멜, 위시본 애쉬, 랜디 로즈, 라디오 헤드... 이젠 모두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고병일(34·교육인)  


출처: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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